역사/인물


명탕의 역사

쿠사츠 온천은 언제부터?

활화산 시라네산/모토 시라네산에 에워싸인 쿠사츠 온천.
쿠사츠 온천 개탕에 관하여 여러가지 설들이 있으나, 약 1800년 전 일본의 신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 日本武尊" 가 발견하였다는 설과 나라시대의 고승인 "교키 行基"가 발견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源頼朝가 입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연류된 것으로 보아 먼 옛날부터 쿠사츠의 온천수가 탁월한 효능으로 유명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깊은 입욕법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오던 쿠사츠 특유의 입욕법으로 유명한 "유모미 湯もみ"
원천 성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욕 온도로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예전에는 입욕자가 스스로 시행하여 입욕 전 준비운동을 겸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쿠사츠의 원천을 살린 온천 치료법은 귀중한 문화 유산으로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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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츠가 역사와 만난 날

1878년 8월,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방일한 독일인 의사 벨츠(Erwin von Bälz) 박사가 처음으로 쿠사츠를 방문하여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고원 온천, 이런 온천지가 유럽에 있다면 카르르스파도(체코에 있는 유럽 유수의 온천지) 보다 번성할 것이다"며 쿠사츠 온천을 극찬하였습니다.
독인 의학회가 쿠사츠 온천의 천질과 효능을 세계로 발표, 소개하면서 근대 의학의 시점에서 쿠사츠 특유의 강산성 온천 성분 등에 주목하는 동시에 뛰어난 입지 및 환경에 관해서도 국내외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905년 귀국할 때까지 쿠사츠를 이상적인 온천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벨츠 박사는 현재까지 쿠사츠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터내셔널 리조트를 향한 새로운 얼굴

쿠사츠는 뛰어난 온천수, 기후, 자연 등 모든 것이 충족되는 고원 리조트입니다. 이것이 벨츠 박사가 제 2의 고향으로 쿠사츠를 사랑했던 이유입니다.
1962년 박사의 고향인 독일 비티히하임 비싱엔 시와 자매 도시 결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 경도에 위치한 산악 리조트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노이 리버(Snowy River) 마을, 설질과 자연이 유사한 오스트리아의 노이쉬티프트(Neustift) 마을, 스파 리조트로 유명한 체코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 시와 자매 도시로 인연을 맺는 등 세계 굴지의 스파 리조트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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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츠 온천과 인연깊은 사람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가마쿠라(鎌倉)시대의 무장, 정치가(1147~1199)
유서깊은 장군의 백탁탕

막부의 실력자임을 알리기 위해 간토지방 각지로 사냥을 다녔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1193년 가마쿠라 막부가 시작된 다음 해에 아사마 산맥으로 사냥을 가던 도중, 쿠사츠 온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바타케 서쪽에 있는 "시로하타노 유"는 미나모토노의 하얀 깃발을 상징하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에도시대에 쿠사츠 온천은 효능을 기준으로 온천 순위를 매겨 기록한 표에 당시 최고 등급이였던 동쪽의 오제키(大関) 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쿠사츠 온천은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를 군림했던 장군과 오제키의 영화로운 인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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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츠 박사 쿠사츠를 세계로 소개한 은인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고원 온천"으로 쿠사츠를 평가한 독일인 의사 벨츠 박사는 도쿄 의학교(현재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로써 방일하여, 메이지 천황의 주치의로 근무하였습니다.
근대 의학의 시점에서 쿠사츠 특유의 강산성 온천 성분 등에 주목하는 동시에 뛰어난 입지 및 환경에 관해서도 국내외로 알리며, 쿠사츠 지역 개발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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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오야 명탕은 붓을 달리게한다!?

근대 일본문학의 걸작 "암야 행로 暗夜行路"의 후반부가 쿠사츠에서 집필되었습니다. 왜 쿠사츠에서 일까요? 생각한 스토리 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3의 장소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감성을 살리고 집중할 수 있는 온천지로 쿠사츠가 최적의 장소였을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또한 쿠사츠를 소재로 한 소설「쿠사츠 온천」에서는 그를 농부로 착각한 에피소드 등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신으로 불리우는 그의 창작의욕을 중요한 고비마다 지켜온 것은 쿠사츠의 온천의 천질과 정서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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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타로 유바타케와 예술, 그 의외의 관계

유바타케를 내려다 보면 매우 공들인 양식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표주박 형태로 나뉘어진 유바타케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 조화롭게 구성한 이 곳은 "예술은 폭탄이다"의 명언으로 유명한 예술가 오카모토 타로 씨가 전체 디자인을 감수하였습니다.
평소 온천과 스키를 즐기기 위해 쿠사츠를 자주 방문했던 그가 도시 계획의 의뢰를 받아 현실화 한 것입니다.
쿠사츠를 향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명탕과 아트의 인연이 많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안식처로 탄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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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츠와 함께한 100명

쿠사츠 온천마을 중심에 위치한 유바타케를 둘러싸고 있는 돌 울타리에는 쿠사츠 온천을 방문했던 저명한 인물, 그 시대를 대표했던 위인으로 선출된 "쿠사츠니 아유미시 햐쿠닝 草津に歩みし百人"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2000년 지방 자치제 시행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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